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를 5세 (문단 편집) === 아내 === 원래 [[프랑수아 1세]]와 그의 왕비 클로드[* [[루이 12세]]의 딸로 프랑수아 1세가 이 결혼으로 프랑스의 왕이 될 수 있었다.]의 딸 2명과 약혼했지만 둘 다 결혼 전에 사망해서 무산되었다. 이름은 루이즈와 샤를로트로 둘 다 한꺼번에 약혼한 건 아니고 차례대로 루이즈는 3살, 샤를로트는 9살 때 요절했다. 결혼 전 외할아버지 [[페르난도 2세]]의 후처, 즉 의붓외할머니인 제르멘 드 푸아와 사통하는 관계였다는 말이 있다. 논란이 있으나 두 사람 사이에서 이사벨이라는 사생아 딸이 태어났다고 한다. ||[[파일:Isabella of Portugal.jpg|width=100%]]|| ||<:>'''[[포르투갈의 이자벨|{{{#000 포르투갈의 이자벨}}}]]'''|| 부인은 [[포르투갈의 이자벨]]. 콜럼버스를 지원했던 [[이사벨 1세]]의 외손녀로 카를 5세와는 이종사촌 관계였다. 부모는 포르투갈의 왕인 [[마누엘 1세]]와 아라곤의 마리아[* [[이사벨 1세]]의 3녀로 원래 언니 이사벨라가 포르투갈의 전 국왕 주앙 2세의 아들인 아폰소 왕자와 혼인을 했었지만 1년 후 아폰소 왕자가 낙마 사고로 사망했다. 6년 후 마누엘 1세와 재혼했지만 1년 뒤 미겔 왕자를 낳자마자 28살이란 나이에 요절하고 미겔 왕자도 1살에 사망하자 이사벨라의 여동생 마리아와 재혼해 10명의 자녀들을 두었다.]다. 어머니 아라곤의 마리아는 이사벨라가 14살이 되던 해 사망했고, 이후 시누이가 되는 오스트리아의 엘레오노르 여대공이 새어머니가 된다.[* [[주걱턱]]이 나왔던 엘레오노르는 그다지 미인이 아니었고, 마누엘 1세가 사망한 이후 2번째 남편이 바로 프랑스의 [[프랑수아 1세]]다. 프랑수아는 이 부인을 너무 싫어해서 대놓고 무시했다.] 이 결혼을 계기로 [[스페인]]이 [[포르투갈]]과 [[이베리아 연합|합병]]하게 된다. [[포르투갈의 이자벨|이사벨]]와 카를 5세는 이종사촌이었고 이사벨라의 오빠인 [[주앙 3세]]는 카를 5세의 여동생 [[오스트리아의 카탈리나|카탈리나]]와 결혼하여 겹사돈이 된다. 이사벨라는 아름다운 외모에 지적이고 영리해서 남편이 대제국을 다스리느라 부재중일 때는 정치를 잘 꾸려나갔다. 부부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고 총 6명의 아이를 낳았는데, 이사벨라는 35세의 나이에 6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다. 이사벨라를 많이 사랑했던 카를 5세는 이후 늘 검정색 상복을 입고 후처 없이 독신으로 지냈다. 유명한 [[티치아노]]의 초상화에서도 칙칙한 검은 옷만 입고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. 사생아가 있기는 했지만, 결혼 전에 3명, 이사벨라와 사별한 후에 [[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|1명]]의 사생아를 낳았으므로 [[불륜]]관계에서 낳은 것은 아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